<판결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사망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7.11.14. 선고 20161066 판결 등 참조).

 



서울행정법원 2020.09.11. 선고 2019구합54993 판결

 

서울행정법원 제3부 판결

사 건 / 2019구합54993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원 고 / A

피 고 / 근로복지공단

변론종결 / 2020.06.26.

판결선고 / 2020.09.11.

 

<주 문>

1. 피고가 2018.7.26.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 B(C, 이하 망인이라 한다)2017.11.15. D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라 한다)에 입사하였다. 망인은 이 사건 회사가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에서 운영하는 인형 제조 공장(이하 이 사건 공장이라 한다)에 자재관리자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채용되었으므로, 2017.11.20. 캄보디아로 출국하여 2017.11.21.부터 이 사건 공장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 망인은 2018.1.12. 캄보디아를 출발하여 2018.1.13. 귀국하였다. 망인은 귀국 당일 오전 E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후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2018.2.26. 사망하였다. 망인의 사망원인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인한 폐렴, 그로 인한 저산소증이었다.

.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2018.7.26. 원고에게 망인의 단기 과로가 확인되지 않고, 망인의 업무환경이 인플루엔자 또는 폐렴을 유발할 만한 상황이 아니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를 하였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2018.10.26.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원고의 재심사 청구를 기각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5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 원고의 주장

망인은 캄보디아 특유의 인플루엔자 유형에 감염되어 면역이 없는 관계로 쉽게 회복하지 못하였고, 캄보디아 현지에서 초기에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결과 증상이 악화되어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폐렴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 관계 법령

별지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 인정사실

1) 망인의 업무내용

) 망인은 1982년경부터 여러 업체에서 자재 및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근무한 경험이 있고,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여러 차례 중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일정 수준의 중국어가 가능하였다. 망인은 이 사건 공장에서 자재관리자로서 공장에 입고된 자재의 현황·재고 파악과 생산 투입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 망인은 엑셀로 작성하는 서류와 이메일을 통하여 자재현황을 공유·확인해야 했는데, 기본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여 이 사건 공장 도착 후 우선 컴퓨터 활용법을 배운 후 업무를 인계받기로 하였다. 이에 망인은 3~4주 동안 저녁식사 후 1~2시간씩 사무실에서 한국인 직원이나 중국인 직원으로부터 컴퓨터를 배웠고,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컴퓨터 연습과 업무정리를 하였다.

) 망인은 2017.12.13.경 원고에게 나 많이 바뻐. 말 배워야지. 컴퓨터 배우고 있지. 자재 챙겨야지. 지금은 말이 안 통하니... 중국말, 영어, 캄보디아말 하고, 손짓발짓하고, 정신없네요.’, ‘매일 퇴근 후에 컴퓨터 배우고 언어도 배워야 하고 참 바쁘네. 열심히 노력하고 해야지. 그런데 여기 말 배우기가 장난이 아니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2) 망인의 근무환경

) 이 사건 공장에는 망인 외에 한국인 2(현지 법인장, 생산관리이사), 중국인 4, 600~650명의 캄보디아 현지인이 근무하였다.

) 이 사건 공장은 자재창고, 공장, 완성품창고, 식당, 기숙사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재창고는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나, 기숙사는 공장 등 업무시설과 약간 떨어져 있었다. 공장 내에는 사무실, 의무실, 생산실, 재단실 등이 위치해 있었다. 망인은 기숙사에서 거주하였고, 주로 자재창고와 공장 내 사무실을 오가며 근무하였다.

) 기숙사는 각 호실마다 화장실이 있는 총 12개 호실과 식당, 세탁시설을 갖춘 2층 건물이다. 기숙사에는 한국인 3, 중국인 4명과 현지인 3(인사관리자, 통역, 주방도우미) 등 총 10명이 거주하였으며, 출퇴근하며 청소와 세탁을 돕는 현지인 1인이 있었다. 망인은 25호실에서 혼자 거주하였다. 1층 식당에서는 기숙사 거주 인원에게만 식사를 제공하였고, 기숙인원을 제외한 현지인 근로자들은 업무 종료 시 모두 퇴근하였다.

) 망인은 주 6, 18시간 근무하였다. 06:20경 아침식사 후 07:00경 업무를 시작하였고, 11:00부터 12:00까지는 점심시간이었으며, 16:00경 업무를 종료하고 17:30경 저녁식사를 하였다.

) 망인은 이 사건 공장 내에서만 근무하였고 업무시간 중 외출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망인은 캄보디아 도착 후 첫 일요일인 2017.11.26. 프놈펜 시내로 구경을 나갔고, 3~4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프놈펜 시내로 외출하여 이발, 마트 이용, 식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외출 시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한국인 직원과 함께 회사 차량을 이용하였다.

)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의 2017.11.21. 최저기온은 25°C, 최고기온은 31°C였다.

3) 망인의 발병과 치료 경과

) 망인은 2017.12.7. 열이 나고 춥고 입 안과 귀 안이 헐었다는 증상을 호소하며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여, 이 사건 공장 내 의무실에서 항생제(amoxicillin)와 해열진통제(paracetamol)를 받아 투약하였다. 당일 의무실 기록지에 의하면, 망인과 같은 날 진료를 받은 다른 현지인 근로자들이 설사, 감기, 두통, 복통, 발열, 어지럼증 등의 증상을 호소한 바 있다.

) 망인은 2017.12.9.경부터 2017.12. 중순경까지 한국에서 보내온 감기약 9일분을 투약하였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 망인은 2018.1.4.부터 2018.1.6.까지 몸이 좋지 않고 춥다고 하면서 오후에는 기숙사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였고, 월요일인 2018.1.8.에는 하루 종일 출근을 하지 못하고 겨우 식사만 하였다.

) 망인은 2018.1.9. 프놈펜에 위치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F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혈액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말라리아, 장티푸스, 뎅기열에 관하여 음성 판정을 받았다. 망인은 상기도감염(URTI)으로 진단받고 수액을 맞았으며, 항생제와 해열진통제를 받아 투약하였다.

) 망인은 2018.1.11. 프놈펜에 위치한 한국의사가 상주하는 G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망인은 구강궤양, 설사, 역류성 증상을 호소하였고, 구내염(stomatitis)으로 진단받고 수액을 맞았으며, 소염제와 해열진통제를 받아 투약하였다.

) 망인은 2018.1.12. 몸이 좋지 않아 오전에 기숙사에서 쉬겠다고 하였고, 이에 이 사건 회사는 망인으로 하여금 당일 저녁 귀국하도록 하였다.

) 망인은 2018.1.13. E병원에 내원할 당시 주로 기침과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였으며, ‘내원 10~20일 전부터 기침, 가래, 고열 및 숨 차는 증상이 있었고 기침 시에 흉통이 동반된다.’라고 하였다. 검사 결과 망인은 인플루엔자 A형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 망인은 2018.1.19.부터 저산소증과 산성혈증이 나타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18.2.26. 인플루엔자로 인한 폐렴이 합병증인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진행되어 사망하였다.

) 망인은 캄보디아 출국 전까지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었고, 고혈압이나 당뇨병, 심장질환이나 폐질환 등의 기저질환도 전혀 없었으며, 2012년 이후 건강보험 수진 내역에서도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인정근거] 갑 제6 내지 16, 18 내지 21호증, 을 제1 내지 7호증의 각 기재, 이 법원의 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이 법원의 D 주식회사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사망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7.11.14. 선고 20161066 판결 등 참조).

2) 판단

위 인정사실과 앞서 든 증거, 을 제8호증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 망인은 캄보디아로 출국한 이후 이 사건 공장에 근무하면서 줄곧 이 사건 공장부지 내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이 사건 공장은 프놈펜 시내와 떨어져 있었고 대중교통편이 없어 회사 차량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외출을 할 수 없었다. 망인은 퇴근시간 후나 일요일에 기숙사에 머무르다가도 사무실로 가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망인의 특수한 근무환경 및 생활환경을 고려하면, 업무에 관련된 부분과 사적인 생활에 속하는 요인을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 이 사건 공장의 현지 법인장인 H의 진술에 의하면, 망인은 캄보디아 도착 후 첫 주말인 2017.11.26. 프놈펜 시내로 외출하였고, 그 후에도 3~4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프놈펜 시내로 외출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망인이 이 사건 공장에 근무한 기간이 총 53일에 불과하고 2017.12.7.경 이후에는 계속 몸이 좋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이 프놈펜 시내로 외출한 횟수는 1~3회 정도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료기록 감정의는 망인의 임상소견 및 진행과정에 비추어 2017.12.7.경 발병한 최초 상병이 지속되어 사망의 원인인 폐렴 및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악화된 것이라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의 잠복기는 평균 2~4일이고 길어도 1주일 이내이며, 망인의 증상이 최초로 발현된 것은 2017.12.7.경이므로 잠복기를 고려하면 프놈펜 시내가 아니라 이 사건 공장 내에서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인플루엔자는 비말 등에 의한 간접 및 직접 접촉에 의해 전파된다. 이 사건 공장에는 600명이 넘는 캄보디아 현지인 근로자가 근무하였고, 해당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공장 내 구역의 면적은 약 4,980m2로 각종 설비와 공간 구획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밀집도가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망인이 자재관리 업무를 담당하여 생산직 근로자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적은 편이었다고는 하지만, 망인은 공장 건물에 위치한 사무실 또는 자재창고에서 근무하면서 위와 같이 밀집된 환경 속에서 현지인 근로자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망인은 근로자들을 밀접하게 접촉하는 생산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인 직원 및 중국인 직원들과 계속 교류 하며 이 사건 공장 내에 상주하였고, 기숙사에도 현지인 직원 3명이 거주하였으며 기숙사로 출퇴근하는 현지인 직원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집단시설의 업무환경에서는 인플루엔자와 같은 공기전파성 질병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망인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은 업무환경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국내에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는 주로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낮은 기온에서 많이 발생하나, 캄보디아의 경우 연중 기온이 높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흔히 발견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다른 유형이 유행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기존의 항원형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항원형으로 변하는 항원 대변이는 인플루엔자 A형에서 주로 일어나는데, 항원 대변이에 의해 새로운 아형이 생기면 이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A형의 유행 빈도가 높다. 진료기록 감정의도 캄보디아에서는 다양한 인플루엔자가 1년 내내 유행하고, 주로 겨울에 유행하는 국내의 흔한 인플루엔자와 다른 변종이 보고되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 근로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인플루엔자에 평소 노출되어 면역력이 있어 가벼운 증상으로 넘어갈 수 있으나, 캄보디아에 갓 도착한 망인은 캄보디아 특유의 인플루엔자에 면역이 없어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악화되었을 수 있다.’라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망인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과, 발병 후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질병이 악화되어 합병증이 발생한 데에는 이러한 인플루엔자 유형의 특수성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망인은 처음 증상이 나타난 후에도 의무실에서 받은 해열진통제 등을 복용하였을 뿐 약 1개월 동안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였다. 망인은 2018.1.9. 2018.1.11. 프놈펜에 위치한 병원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았으나, 각 병원에서는 인즐루엔자 감염을 진단하지 못한 채 상기도감염이나 구내염으로 진단하여 망인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였다. 망인이 국내에서 근무하였다면 보다 조기에 인플루엔자 진단을 받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치료제를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캄보디아에서 적절한 치료 기회를 갖지 못하고 최초 증상 발현 후 1개월이 지난 2018.1.13. 이후에서야 귀국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는 사정이 망인의 질병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진료기록 감정의도 조기 진단이 늦어 악화된 상태로 내원하여 타미플루 투약 등 제대로 된 치료를 초기에 못 받은 점도 사망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망인은 아무런 기저질환이 없었고 평소 건강하였으며 사망 당시 만 61세로 인플루엔자 고위험군에 속하는 고령자도 아니었으므로, 캄보디아에 소재한 이 사건 공장에 근무하지 않고 국내에 있었을 경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폐렴이 악화되어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같은 합병증이 동반되어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높지 아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3. 결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유환우(재판장) 박남진 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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