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므로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2] 망인은 외근 검침원들의 관리 업무 등의 고충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외근 검침원들의 인원 감축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 외근 검침원들의 관리자인 망인으로서는 외근 검침원들 중 일부를 감축하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시달렸다.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등’이 업무 및 이 사건 사업의 확대 시행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서울행정법원 제14부 2018.04.26. 선고 2015구합82846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 원 고 / 이○○
♣ 피 고 / 근로복지공단
♣ 변론종결 / 2018.03.29.
<주 문>
1. 피고가 2015.9.23.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와 내용
가. 망 임○○(이하 ‘망인’)은 1994.10.1. ○○산업개발 주식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에 입사하여 제주지점에서 이 사건 회사가 ○○○○○○공사로부터 위탁받은 전기사용량 검침 업무 중 외근 검침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1.10.부터는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외근 검침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였다.
나. 망인은 2014.5.26. 새벽 제주시 ○○○○10길 2**-2** 근처에 있는 야산 소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5.9.23. ‘망인은 자살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가 없었고, 자살에 이를만한 정신질환을 특정할 수도 없다. 망인의 자살은 이타적 자살로서 판단력 상실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라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2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망인은 업무상 사유로 정신질환 및 불면증이 발생하여 이를 치료하던 중 ‘업무 및 ○○○○○○공사의 원격검침 확대 시행’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관련 법령
별지 관련 법령 기재와 같다. <별지 생략>
다. 판단
1)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므로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4.10.30. 선고 2011두14692 판결, 대법원 2017.5.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등 참조).
2) 인정사실
가) 이 사건 회사의 전기사용량 검침 업무
(1) 이 사건 회사가 ○○○○○○공사로부터 위탁받은 전기사용량 검침 업무는 외근 검침원이 고객을 방문하여 전기계기를 검침하는 업무와 전기요금 청구서 송달업무, 체납고객 관리 업무, 민원 처리 업무, 단전 업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의 전기계기 검침 업무는 36명의 외근 검침원(이하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망인이 수행하였다.
(3)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은 망인 사망 전 수년간 정원보다 적은 수의 검침인력이 근무하였고, 위 지점의 검침 인력은 2014.3.31. 기준 정원보다 5명 이상 적은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4)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은 1개월을 6개 차수, 20일로 구분하여 구역별로 검침일정을 나누어 전기계기 검침 업무를 수행한다.
(5)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의 급여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급여와 기준 검침량을 초과하여 수행한 검침량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수수료로 구성되어 있다.
나) 망인의 업무
망인은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의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외근 검침원들의 검침일정을 관리・조정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구체적으로, 망인은 매년 4월과 10월에 외근 검침원들의 현장여건을 반영하여 담당 구역을 변경・재분배하고(정기 업무분장), 수시로 외근 검침원들의 휴가 및 결근 등으로 공백이 발생한 지역에 임시로 다른 외근 검침원들을 배치하였다(임시 업무분장).
다) ○○○○○○공사의 원격검침 사업 확대 시행
(1) ○○○○○○공사의 원격검침 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은 ‘사령실에 위치한 감시 소프트웨어와 통신 기능을 제공하는 검침 장치 및 통신 연계 장치들로 구성된 원격검침시스템을 이용하여 검침원의 직접 방문 없이 전기사용량의 검침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2) ○○○○○○공사는 2014년 초경 제주시 45,000호에 대하여 2014.9.경부터 이 사건 사업을 확대 시행하고, 2020년경까지 제주도 전체 가구에 대하여 이 사건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3)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 중 제주시 45,000호를 담당하는 검침원은 7명가량이다.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은 이 사건 사업으로 고용 불안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4) ○○산업개발 노동조합이 포함된 전기검침산업별노동조합 산별추진위원회는 2014.9.경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이유로 이 사건 사업의 확대 시행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전기검침 노동자 총력투쟁계획’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라) 망인의 유서
(1) 망인은 사망 당시 가족들에게 “여보, 조용히 떠나려고 내색은 안 하고 평소와 같이 지내려고 무척 애쓰면서 보내며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하며 오늘을 맞았네. 처음 겪는 황망한 일이지만, 잘 넘겨서 꿋꿋하게 살아가길 빌겠소. 허례허식 없이 조용히 보내주고, 어머니 잘 부탁하네. 불효자가 할 말은 없네만, 당신 늘 말하는 △△ 생각하고 힘내. 남들 말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귀양풀이, 사십구제 등등 하지 말고 어차피 지내는 설, 추석 차례 때 잊지 않는 것으로도 감지덕지지 뭐. ○○이하고 ○○이는 △△ 키우느라 힘든데 못난 아비 때문에 힘든 일 더 치르게 해서 미안하고, ○○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니 잘 보필하렴. 모두에게 짐만 남겨두고 가서 미안하구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2) 또 망인은 이 사건 회사 직장 동료들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4만호 원격검침 시행은 착착 진행되고... 7명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힘없는 약자는 막을 수가 없네. 상명하복의 위계에서 상부의 지시대로 이행할 수밖에 없겠고...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도 잘 된다고 보고되겠지? 원격 실패되는 것은 결국 우리 직원이 보물찾기하듯이 찾아가야 되고...
공휴일이 많은 달은 반갑지가 않다! 또 어떻게 전산일정을 맞출까 고민해야 되고, 2일치 업무를 하루에 소화하려니 고객응대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데, 할 일은 많다. 부가업무라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반갑지가 않은데, 장마철과 태풍이 오면 또 어떻게 하루하루 무사히 검침이 마무리될지 속이 탄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고, 몸무게도 부쩍 눈에 띄게 줄고, 아픈 데는 없는데...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우리 직원들이 존경스럽다. 더 챙겨주고 다독여주어야 되는데, 죄송할 뿐이고, 특히 몇 개월 안 되었지만, 제주지점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시는 지점장님과 고○○ 과장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씨의 성실함에 보탬을 못 주고 먼저 떠나는 못난 동료를 용서하여 주시길 빕니다.
비록 하찮은 하소연이지만, 나비효과가 되어 지금 준비 중인 원격검침이 보류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마) 망인의 정신건강
(1) 망인은 2013.5.16.경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로 진단받고 그때부터 2014.4.30.까지 주기적으로 약물치료 등 진료를 받았다.
(2) 피고 자문의들은 망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가 자살에 이를 만큼 중한 우울증상을 초래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망인의 불면증은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특히 자살에 이를 만한 정신질환 상태를 특정할 수 없다. 이타적 자살은 판단력 상실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기 어렵고, 아직 인원 감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나비효과를 기대하여 자살한 것은 병적 상태이거나 판단력 상실로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의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3) 망인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감정의는 ‘망인이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우울 및 불면 치료효과, 불안 치료효과를 위해 사용된 것으로 2013.10.12.부터는 그 용량이 2배로 증가되었다. 2013.10.12. 진료기록에 따르면, 망인이 평소보다 신경 쓰는 일이 더 많아져서 증상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망인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약 처방 이외에 개인정신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신치료는 환자의 증상을 파악하고 증상의 원인 등을 확인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과 지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망인이 사망 당시까지 당초 진단받은 수면장애, 불안 및 우울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치유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한다. 망인이 검침총괄 업무를 맡은 시점인 2011년은 신체적으로 건강했던 망인이 불면증 등 정신건강의 문제를 호소한 시점과 비슷하여 위 업무와 망인의 정신건강 문제 사이의 시기적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다. 우울증으로 부정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있고, 충동적으로 자살사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망인에게 진단된 위 상병의 악화는 자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서의 내용만으로 망자가 정신질환 상태(정신병적 상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망인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는 그 내용이 짧아 망인의 심리적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나, 그 내용상 우울증의 진단요소인 자살사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망인은 직장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상부에서 지시한 원격검침 사업 시행에 따른 인원 감축 및 업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위 유서에는 토로 및 하소연, 고발 및 탄원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망인이 억울하고 막막한 심리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망인은 직장 내 업무 등에 기인한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심각한 판단력 상실이 동반된 것으로 생각한다’라는 내용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바) 기타
(1) 망인과 함께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에서 근무한 ☆☆☆은 망인의 사망과 관련한 피고의 조사에서 ‘○○○○○○공사가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 관할 구역 중 4만호에 대하여 원격검침 사업을 확대 시행한다고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 중 7명은 직장을 잃을 상황이었다. 망인은 위 7명을 선정하고 위 4만호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남은 외근 검침원들에게 재분배하여 이끌어갈 책임자였다. 망인은 성격이 밝고 원만해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 직원들과 잘 지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 ☆☆☆은 ‘망인은 2014년 초경 자신과 차를 마시면서 이 사건 사업 확대 시행 등과 관련하여 “올해는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지만, 내년에는 우리 직원이 그만두어야 될지 모른다.”라고 말하였다’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였다.
(2) 망인의 아들 임◆◆은 망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제주서부경찰서에서 ‘망인은 과묵한 편이지만 가족들과 잘 지냈고, 대인관계도 좋은 편이었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6, 12~16, 18, 19, 22호증, 을 제1~4호증의 각 기재, 이 사건 회사와 주식회사 제이비씨에 대한 각 사실조회결과, 아주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3) 구체적 판단
가) 위 인정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 자문의들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망인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등’이 업무 및 이 사건 사업의 확대 시행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인다.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① 망인은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의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매년 4월과 10월에 외근 검침원들의 담당 구역을 변경・재분배하는 정기 업무분장 등의 업무를 하였다. 위와 같은 업무분장은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의 성과수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근 검침원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망인 또한 외근 검침원들의 성과수수료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 위 전기계기 검침 업무는 1개월을 6개 차수, 20일로 구분하여 구역별로 검침일정을 나누어 수행되는데, 위 차수별로 공휴일이 있거나 비가 오는 경우에는 검침 업무를 모두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망인은 검침 업무를 전제로 진행되는 전기요금 정산, 전기요금 청구서 송달, 체납고객 관리, 단전 등의 후속 업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위 차수별로 검침 업무를 마무리하여야 한다는 압박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의 검침 인력이 정원보다 5명 이상 적은 상황은 위와 같은 검침 업무 수행에 큰 장애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위와 같은 망인의 업무 상황과 망인이 이 사건 직장 동료들에게 남긴 ‘검침일정을 맞추기 어렵고, 하루하루 무사히 검침이 마무리 될지 속이 탄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려하면, 망인은 2011.10. 무렵부터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외근 검침원 관리 업무를 하면서 상당한 기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판단한다.
② 망인은 2013.5.16.경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로 진단받았다. 망인에 대한 진료기록에 따르면, 망인이 불면증 등 정신건강의 문제를 호소한 시점은 2011년경으로, 이는 망인이 이 사건 회사 제주지점에서 검침총괄 담당을 맡기 시작한 시점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감정의도 이를 근거로 망인이 검침총괄 업무를 맡은 시점과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한 시점의 시기적 관련성을 지적하고 있다. 망인이 2011년경 다른 사유로 불면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에 앞서 본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더하여 보면, 망인의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등의 정신질환은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③ 이 사건 사업은 원격검침시스템을 이용하여 외근 검침원의 직접 방문 없이 전기사용량 검침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 사건 사업이 확대 시행되면, 장차 외근 검침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격검침시스템 도입에 따른 비용이 증가된다.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과 망인은 제주시 45,000호를 담당하는 외근 검침원 7명을 감축할지도 모른다는 고용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망인이 2014년 초경 직장 동료인 ☆☆☆에게 이 사건 사업 확대 시행 등과 관련하여 “올해는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지만, 내년에는 우리 직원이 그만두어야 될지 모른다.”라고 말하였던 점이나, ○○산업개발 노동조합이 포함된 전기검침산업별노동조합 산별추진위원회가 2014.9.경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이유로 이 사건 사업 확대 시행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전기검침 노동자 총력투쟁계획’을 마련하기도 하였던 점 등까지 고려하면, 그들의 고용 불안은 조만간 현실로 맞닥뜨릴 구체적 문제이었다. 망인은 직장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이 사건 사업의 시행으로 7명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현실과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막막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특히 망인은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면서 자신이 이 사건 외근 검침원들 중 일부를 감축하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④ 망인의 정신질환은 점점 악화되어 2013.10.12.부터는 종전에 사용한 약의 용량이 2배로 증가되었고, 망인은 사망 약 1달 전인 2014.4.30.까지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등 사망 당시까지 당초 진단받은 수면장애, 불안 및 우울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치유하지 못하였다. 망인의 진료기록 감정의는 ‘우울증으로 부정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있고, 충동적으로 자살사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으므로, 망인에게 진단된 위 상병의 악화가 자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망인은 직장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이 사건 사업 시행에 따른 인원 감축과 업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유서의 내용에 비추어 망인이 억울하고 막막한 심리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망인은 직장 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심각한 판단력 상실이 동반된 것으로 생각된다’라는 내용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위와 같은 사정과 망인의 유서 내용, 앞서 본 망인의 업무 등에 따른 스트레스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이 사건 사업 확대 시행에 따른 스트레스는 망인의 사망 당시까지 계속하여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왔고, 망인은 그로 말미암아 당초 진단받은 수면장애, 불안 및 우울병 장애 등의 정신질환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으며 그러한 정신질환의 악화로 정상적인 판단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⑤ 망인이 가족들에게 작성한 유서의 내용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사망 이후에도 잘 살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망인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나 경제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망인의 성격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나) 따라서 이와 달리 본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 론
원고의 청구는 타당하므로 받아들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정중(재판장) 김나경 홍승모